볼트와 너트처럼 아름다운 짝이 있을까
-기계조립하는 시인 옥빈

볼트와 너트
이 세상에 어찌 이처럼 아름다운
완성된 짝이 있으랴

산과 골
그 깊지 않은 깊이로

흐르는 사랑

세상의 모든 만남을 위하여 준비된
아름다운 힘은
사랑이다

-<<업무일지3>>

일생을 기계를 만지며 산 평범한 한 생활인이 지은 이 시는 아마 볼트와 너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통찰력중의 하나가 아닐까. 대전 대화공단에서 콤프레사를 조립하는 상점을 운영하는 옥빈(玉賓·40·본명 장영옥·張永玉)씨가 첫 시집에 수록한 <업무일지3>은 이렇게 사소하게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에서 놀라운 의미를 발견한다. 20년 가까이 기계를 깎고 닦고 조이는 일을 해온 옥씨는 기계적인 동작에 함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루한 단순반복이라고 평가절하하던 그 동작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옥씨는 “볼트와 너트를 조이면 손으로 풀 수 없는 힘이 생긴다. 이같이 완벽한 만남에서 생기는 힘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시인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능인처럼 살아왔다. 대전의 충남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잠시 적을 뒀다가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시작(詩作)에 발을 들여놓은 시점이 바로 이즈음. 1986년 ‘섬시’ 창단 발기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게 됐다. 이어 용인으로 옮겨와 ‘서정 3세대’ 동인회를 창단하다가 90대 말부터 대전권으로 옮겨왔다.

거제도에서 나온 시 한편을 소개하자.

''이곳을 올 때마다/고향을 찾는 기분으로/그리운 섬 하나 앞세우고 온다... 때로 산다는 것이/눈물같은 것이어서/잊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그리운 것은 더욱 그리워져/이곳에 와서 내가 낚아야 할 것은/내사랑과 기억의 뿌리들이다/이곳을 떠날 때마다/고향을 떠나는 마음으로/그리운 섬 하나 안고 간다''<거제도에서>

하지만 노동이나 직업을 소재로 한 작품 못지않게 가족과 풍경등에서 느끼는 서정을 풍부한 감성으로 읖은 시도 적지 않다. 지금은 작고한 부모에 대한 따스한 마음도 그의 소재이다.

''천장도 잘 바르시던/물과 모래와 시멘트의 배합을 잘 하시던/술과 노동의 힘을 빌려쓰셨던/반목수였고 농사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시인은 지난해 한국생활문학상 작품상과 문학사랑(www.lito77.co.kr)주최 제4회 인터넷 문학상을 같이 수상했다. “시를 쓰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옥씨는 “앞으로는 산문시를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인을 설득해 첫 시집 <<그대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겠어요>>를 출판한 오늘의 문학사 이헌석(李憲錫)대표는 “직업으로하는 일이 쉽고 재미있는 것만도, 기쁨이나 보람만 얻는 것도 아닐텐데 옥빈시인은 힘든 삶의 새로운 의미를 천착하는 달관적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기자 : 임도혁